2026-11-01·약 6분

2년 넘게 보관하다 낸 옷에서 DNA가 나왔다면 — 성범죄 재판과 과학적 증거의 증명력

성범죄 재판과 DNA 감정의 증명력

DNA 감정 결과를 유력한 유죄 증거로 평가하려면 감정 기법뿐 아니라 채취·보관·분석 과정의 동일성과 오염 가능성도 검토해야 합니다. 2년 이상 보관된 바지의 감정서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을 정리했습니다.

성범죄 재판에서 DNA 감정 결과의 증명력과 증거물 보관 과정을 설명하는 법률 인포그래픽

DNA 감정 결과는 곧바로 결정적인 증거일까요

성범죄 재판에서 DNA 감정 결과는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감정 대상이 된 물건이 사건 후 오랫동안 피해자나 다른 사람의 손에 보관되다가 뒤늦게 제출된 것이라면, 그 감정 결과를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대법원은 2026년 피해자가 2년 이상 보관하다 제출한 바지의 DNA 감정서를 근거로 강간을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다시 열리는 재판에서 판단되므로 이 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DNA 감정 증명력의 기준을 조문과 판결로 정리해 드립니다.

과학적 증거가 구속력을 갖는 조건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정하고,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깁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추론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경우라야 법관의 사실인정에 상당한 구속력을 가진다고 봅니다(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1902 판결 등). 이를 위해서는 전문 감정인이 공인된 표준 검사기법으로 분석해야 할 뿐 아니라,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특히 그 증거가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일수록 과학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 엄격한 증명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고 했습니다.

1심 무죄, 항소심 유죄로 갈린 사건

2026년 판결의 사건에서 피고인은 2021년 8월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성관계 사실은 인정했지만 폭행이나 협박으로 강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다투었습니다. 피해자는 허리가 고무 밴딩으로 된 슬랙스 바지를 피고인이 강제로 벗겼다고 진술했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단추가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스스로 벗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약 한 달 뒤 당시 입었던 바지라며 사진을 냈지만, 바지 실물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뒤인 2024년 1월에야 검찰에 제출되었습니다. 1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에서 바지에 대한 DNA 감정이 이루어져 바지 안쪽 사타구니 솔기 부위에서 피고인의 Y염색체 DNA형이 검출되었고, 원심은 이를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보관 과정이 담보되지 않은 감정서

대법원은 이 감정서를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로 쉽게 받아들여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바지는 사건 당일부터 수사기관에 제출될 때까지 2년 이상 피해자가 보관했는데, 그동안 조작·훼손·첨가가 있었는지와 뒤늦게 제출된 경위에 대해 피해자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술한 적이 없고 재판에서 심리되지도 않았습니다.

또 바지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 외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의 DNA도 다수 검출되었고, 피해자의 직장 동료들이 사진 속 바지가 당시 피해자가 입던 바지가 아닌 것 같다고 진술한 수사보고서도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보관 과정에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객관적으로 담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실제 조작이나 피해자의 허위 진술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사건 초기부터 바지의 중요성을 알고 사진을 찍어 제출했으므로, 수사기관이 초동수사에서 증거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감정서의 과학적 합리성에 의문이 생긴 이상 검사가 이를 객관적으로 해소할 증명을 추가로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새 DNA 감정이 1심 판단을 뒤집을 근거가 되려면

대법원은 항소심이 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으려면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거나 논증이 논리와 경험법칙에 어긋나는 등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이거나,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칠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난 경우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 사건에서 원심이 추가로 조사한 증거는 피해자에 대한 두 번째 증인신문과 감정서뿐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두 번째 증인신문에 따른 심증 형성은 존중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감정서가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면 검사가 채취·보관·분석의 전 과정에 대해 추가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심으로서는 이를 토대로 판단하거나, 감정서를 빼고도 추가 증거조사 결과만으로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6도4423 판결).

성범죄 재판에서 과학적 증거가 문제 된다면

첫째, DNA 감정 등 과학적 증거가 제출되면 감정 기법뿐 아니라 감정 대상물이 언제, 누구에 의해 채취·보관·제출되었는지 경위를 확인하십시오. 이 사건에서도 보관 과정이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둘째, 감정 결과에 다른 사람의 DNA가 함께 나왔는지, 감정 대상물이 사건 당시의 물건과 같은지에 관한 다른 증거가 있는지도 살피십시오.

셋째, 항소심에서 새 증거가 제출되었다면 그 증거의 증명력과 1심 판단을 뒤집을 만한 사유인지를 함께 다투어야 합니다.

넷째, 관련 위법행위를 한 사실이 있다면 재범을 막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십시오. 법무법인 더프라임이 기획·제작한 온라인 재범방지교육의 수료증도 재범을 막기 위해 스스로 기울인 노력을 보여 주는 자료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원이 명하는 수강명령이나 이수명령을 대신하지 않으며, 형은 법원이 사건 전체를 보고 정합니다.

QDNA가 검출되면 유죄가 인정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방법이 상당한 구속력을 가지려면 감정 기법이 공인된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과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피해자가 오래 보관하던 물건도 증거가 될 수 있나요?›

증거로 제출될 수는 있지만,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2년 이상 보관된 바지의 보관 과정과 제출 경위가 심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감정서를 쉽게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검사가 보관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추가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Q강간죄의 처벌은 어느 정도인가요?›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합니다.

Q항소심에서 새 증거가 나오면 1심 무죄가 뒤집히나요?›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칠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나면 1심 판단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새 증거의 증명력이 인정되어야 하므로, 위 사건처럼 과학적 증거의 전제 요건이 심리되지 않았다면 파기될 수 있습니다.

Q이 판결로 무죄가 확정되었나요?›

아닙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으므로 다시 열리는 재판에서 판단됩니다. 대법원은 감정서를 제외하고도 원심의 추가 증거조사 결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